차종일 전 연변자치주정부 부비서장 관련 범죄사건의 시말

(흑룡강신문=하얼빈) 그는 워낙 길림성 연변주정부의 부비서장 직무를 맡고 있었으나 우연한 기회에 28살난 녀성사기군을 알게 되였는데 그녀가 자신을 주당위 서기의 '정부(情妇)'라고 사칭하면서 그의 승진을 도울수 있다고 암시하자 그녀한테 선후로 인민페 180만원을 '상납'해왔으며 나중에 녀성사기군의 범죄행각이 꼬리잡히는 바람에 덩달아 부패행위까지 탄로나고 말았다...
차종일은 연길시간수소에서 참회서를 만장같이 썼다. 차종일은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정부의 전 부비서장으로 지냈다. 2009년 10월 그는 참회서에서 자신이 다년간 조직의 양성을 저버리고 금전과 탐욕에 눈이 어두워 마침내 자신의 전도를 망쳤다면서 이에 대해 량심의 가책과 깊은 참회를 표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만장같은 참회서는 그의 운명을 개변시키지 못했으며 그는 나중에 무기징역형과 정치권리 종신박탈, 개인재산 전부 몰수라는 크나큰 대가를 치러야만 했다.
승진 가능성 없을 때 '서기의 내연녀' 만나
한통의 전화가 워낙 조용하던 그의 삶을 바꿔놓았다. 2006년 3월 3일 오후 차종일은 사무실에서 낯선 녀성의 전화를 받았다.그녀는 전화에서 "당신은 차비서장님이시지요? 저는 당신의 옛동창 최순자씨의 친구 김연이라고 불러요. 제가 금방 한국에서 돌아왔는데 최순자씨가 당신한테 고급 화장품을 대신 전해달라고 부탁해서요. 그럼 어느 곳에서 저희들이 만나면 좋을가요.."라고 묻는것이였다.
차종일은 전화를 든채 반나절 생각해서야 최순자가 기억에 떠올랐다. 그녀는 그가 농촌학교를 다닐 때 동창이였는데 후에 한국에 갔으며 련락이 단절된지 이미 오래되였다. 그는 최순자에 대해 별로 관심은 없었으나 전화에서 대방의 귀맛 좋은 목소리가 자석마냥 그를 흡인했다. 호기심을 품고 그는 김연이와 저녁 6시에 연길시에 금방 개장한 5성급 국제호텔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저녁 6시께 차종일은 약속한 시간에 어김없이 국제호텔에 찾아갔다. 눈앞에 나타난 녀성은 스물 일여덟살되여 보이는 젊은 녀성이였는데 키가 큰 편은 아니지만 피부가 눈같이 희고 차림새에 시대적 분위기와 고아함이 흘러넘쳤으며 어딘가 그의 마음을 끄는 매력이 있었다.
김연은 정교하게 포장한 화장품 두곽을 차종일한테 넘겨주면서 "제가 한국에서 고찰할 때 우연하게 당신의 동창생 최순자씨를 알게 되였는데 그분이 저에게 연길에 돌아온 뒤 당신을 찾으라고 부탁해서요. 저는 주당위서기 리양씨를 통해 당신의 연락번호를 알아내고 이제야 련락을 드리게 되였어요."라고 말했다.
김연이 주당위서기와도 잘 아는 사이라는 얘기를 듣고 차종일은 저도모르게 귀가 번쩍 트이였다. 평민출신인 차종일은 최근 마침 승진 가능성이 없어 고민하던 차였다.
차종일은 1959년 9월, 길림성 연변주 룡정시 동불사향의 한 농민가정에서 태여났으며 집에는 형제자매가 도합 10명이였는데 그는 그중 막내였다. 1981년 차종일은 농업학교를 졸업하고 룡정시 동불사향정부에 배치받았다. 사업을 잘한 덕에 근 20년간의 분투를 거쳐 주정부 부비서장 직위에까지 오르게 되였다.
이 변방도시에서 그는 명성이 아주 높은 편이였다. 하지만 그는 지금의 직위에 만족하지 않고 마음속으로 연길시위서기 직위가 자기의 몫이라고 생각해왔던것이다. 이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차종일은 신경을 많이 써왔다. 하기에 김연의 말에 그는 귀가 솔깃해져 눈앞에 한가닥 희망을 보게 되였다. 차종일은 이 녀성에게 식사를 대접하겠다며 접근했다.
식사하는 좌석에서 두사람은 술잔을 자주 부딪치면서 술을 마셨으며 여러가지 이야기를 나누게 되였다.
차종일은 김연에게 어떻게 주당위 서기 리양씨를 알게 되였는가고 묻자 그녀는 방긋 웃으면서 "친구의 소개로 알게 되였어요"라고 대답하면서 "하지만 리양씨와 저의 관계는 확실히 괜찮아요..."하고 의미심장하게 덧붙였다.
이 말에 차종일은 김연과 리양서기의 관계가 일반 관계가 아니라고 믿게 되였다.
연변의 정계에서 10여년을 보내온 차종일은 연변주 정계의 일부 에피소드들을 얘기했다. 뜻밖에도 그녀가 연변주의 서기로부터 주장에 이르기까지 각 국, 각 판공실, 크고작은 인물에 대해 대부분 알고 있었으며 그중 또 많은 사람들은 그녀의 친구라고 했다. 이에 차종일은 크게 놀라지 않을수가 없었다.
내연녀의 환심사기 위해 한국 가서 양복 구입
호텔에서 나올 때는 이미 자정이 넘은뒤였다. 취기가 도는 김연의 얼굴을 보면서 차종일은 마음이 동했다. 하여 그는 그녀을 끌고 직접 한 4성급 호텔에 들어가 방을 잡았다.
두사람이 살을 나눈 뒤 차종일은 그녀와 주당위서기 리양의 관계에 대해 또다시 물었다. 이때 김연은 자신이 리양의 내연녀라고 솔직하게 시인하는것이였다.
자신이 뜻밖에도 주당위 서기와 같은 녀성을 좋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차종일은 일종 말못할 감각이 들었으며 자기가 승진하기 어렵다는 고민을 몽땅 김연한테 털어놓았다.
"오빠, 이 일은 시름놓으세요! 금생에 우리가 연분이 있는것이니 년말에 가서 오빠가 성공적으로 승진하도록 제가 도와 줄테니깐요." 김연은 더한층 자신의 가정상황을 털어놓으면서 삼촌이 길림성당위 부서기로 있는데 바로 이런 관계가 있기에 그녀가 연변에 와서 수입장사를 할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김연의 인맥이 이토록 넓다는것을 알게 된 차종일의 마음은 몹시 기뻤다.
이로부터 차종일은 여러가지 방식으로 김연의 환심을 사기 위해 빈번히 만나 그녀를 위해 다이아몬드 가락지, 고급복장을 사주기 시작했다. 차종일은 김연보다 19살 년상이라는 점을 감안하여 년령격차가 크다는 리유로 김연에게 얕잡아 보이지 않으려고 날마다 몸차림에 신경썼으며 또 옷차림에도 더구나 사치를 추구했다. 그는 해마다 두번이상 한국에 가서 고급 양복과 구두를 장만해 치장하는것으로 년령격차를 줄여보려고 시도했다.
2007년 6월, 차종일은 김연의 사기사건으로 들통나 조사를 받을 때 그에게는 양복이 50여벌, 구두 300여컬레가 있었는데 종래로 입거나 신어본적도 없었다.
김연을 위해 온갖 신경을 써온 차종일은 그녀가 그 무슨 주당위 서기의 내연녀도 아니고 성당위 부서기의 친척도 아니며 류사한 사기 수법으로 두번이나 옥살이한 경력까지 있는 '사기군'이였다는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승진 위해 부비서장 180만원 사기 당해
김연은 1978년 10월 연변주 도문시산하의 한 벽촌에서 출생했다. 그녀는 어릴적부터 언변이 좋았다. 고중을 졸업한 뒤 홀몸으로 연길에 와서 품삯일을 했으며 21살때 연길시의 한 자동차정비일군한테 시집갔다.
김연은 이토록 평범한 생활이 싫증났으며 자신의 궁핍한 처지를 개변하려고 신경쓰기 시작했다. 그녀는 고급 소비장소에 드나드는 부자집 마누라와 화이트칼라(白领) 녀성들을 자세히 관찰하고나서 자신의 생김새가 그녀들보다 별반 못하지 않으나 생활수준은 하늘과 땅의 차이라는것을 발견하게 되였다. 그녀가 보기에는 돈만 있으면 현상태를 개변할수 있었다. 돈을 손에 넣기 위해 그녀는 연변주 부주장의 친척으로 위장하여 사기를 치다가 경찰에 잡혀 2002년 2월 22일 연길시법원에 의해 4년 유기형을 선고받았다.
2002년 12월, 김연은 감형을 받고 석방되였으나 악습을 고치지 않고 또 옛 길을 걷게 되였으며 2004년 1월 15일, 재차 연길시공안국에 나포되여 보석됐다가 2005년 1월 14일 보석을 취소했다.
이때 선후로 몇번 '감옥살이' 경력이 있었으나 그녀는 잘못을 고치려하지 않고 오히려 어떻게 사기수단을 제고시킬것인가에 머리를 썼다. 상층인물과 접촉하기 위해 그녀는 각종 수단을 통해 성, 주, 시 3급 지도자들의 사무전화, 휴대폰과 주택전화 번호를 수집하고 사기범행을 실시했다. 차종일은 바로 그녀가 알심들여 선택한 목표물의 하나였다.
2006년 4월 6일, 김연은 차종일에게 전화를 걸어 며칠간의 활동을 거쳐 승진이 가망있게 되였으나 30만원의 로비자금(活动经费)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에 차종일은 선뜻 33.8만원을 내놓았다.
돈을 넘겨준 뒤 차종일은 이 구멍을 막기 위해 직무의 편리를 리용하여 돈을 빌려 주택집금대금을 바친다는 명의를 빌어 선후로 연길시금지부동산개발유한회사로부터 40여만원을 챙겼다.
2006년 '5.1'절 련휴를 앞두고 김연은 재차 차종일을 찾아 그가 찾은 성당위 지도자가 중앙에 가서 일을 보게 되는데 100만원이 급히 수요된다면서 그더러 준비해달라고 부탁했다. 김연은 "저는 이것이 성의 지도자에게 잘 보이는 가장 좋은 기회라고 봐요. 성의 지도자를 기쁘게 한다면 당신이 연길시위서기로 되는것은 식은 죽 먹기가 아닐가요"라고 말했다. 차종일은 주저없이 그날 점심으로 100만원을 김연의 카드에 입금해주었다.
하지만 차종일은 김연이 돈을 받은 뒤 '아오디' 승용차를 사고 또 고급 복장과 금장신구를 샀으며 고급 오락장소에 가서 한바탕 탕진할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2006년 7월의 어느날, 김연은 새로 산 '아오디' 승용차를 몰고 차종일과 연길시 모아산산장에 가서 피서하기로 약속했다. 그녀는 애교를 부리며 차종일의 가슴에 누워 말했다. "최근에 당신이 돈을 많이 쓰게 하여 정말 죄송해요. 하지만 당신의 일은 관계되는 사람이 많아 어쩔수 없어요. 요즘에야 저는 성당위 조직부에서 금방 지도자를 바꿨다는것을 알게 되였어요. 비록 저희 삼촌과는 좋은 친구이지만 우리도 좀 성의를 보여야 되지 않을가요?" 이에 차종일도 조직부를 홀시해서는 안된다며 30만원을 넘겨주었다.
2006년 10월초, 김연이 그의 승진문제로 장춘에 가서 성정부 지도자를 만나 구체적으로 확정할 계획이라고 말하자 차종일은 그녀에게 10만원을 활동경비로 주었으며 2007년 1월, 김연이가 길림성위 지도자가 길림시에서 그녀를 만나려고 한다고 말하자 또 3500파운드(英镑)를 주었다. 1년도 안되는 사이에 김연은 차종일의 '승진'문제를 두고 선후로 차씨로부터 180만원을 얼려냈다.
'승진'을 위한 손실을 미봉하기 위해 차종일은 미친듯이 재물을 긁어모았다. 김연도 그에게 끊임없이 전화를 걸어 '활동'의 진척상황을 회보했다.
술상에서 허풍 치다가 들통나
2006년 7월, 차종일은 개발상 서모씨를 위해 연길시 남산수토보호소 토지변경수속을 해주었는데 단 이번에만 해도 10만유로의 회뢰를 받았다.
실상 차종일은 연변자치주토지국 국장으로 있을 때부터 구실을 찾아 주토지조사지대를 설립하여 현시의 토지조사권을 주로 거두어들여 자신의 손에 넣고 사리를 도모하기 위해 조건을 마련했다.
차종일은 제멋대로 회뢰를 받음과 동시에 경상적으로 '빌린다'는 명목을 걸고 일부 개발상들한테 공개적으로 회뢰를 받았다. 이때 차종일의 처도 남편의 투입이 너무 큰것을 보고 여러차례 그만두라고 권고했다.그러나 소용이 없었다. 차종일은 자신을 위해 마지막 주사위를 던졌는데 그것인즉 성사하면 연길시위서기로 되고 성사하지 못하면 돈을 조금 손실보게 된다는것이였다.
2007년 3월 21일, 김연은 일부 친구들과 어울려 연길시의 유명한 진달래식당에 가서 밥을 먹게 되였다. 이는 전형적인 조선족식당으로서 독칸이 따로 없이 그냥 칸막이로 작은 칸을 막아 술상과 술상 사이에서 말하는것을 서로 들을수 있었다. 이날 술에 취한 김연은 너무 흥분되여 자신이 어떻게 리양과 알게 되고 어떻게 사랑하게 되였다는 세절들을 불어대기 시작했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고 마침 옆칸에서는 중공연변주위 판공실의 한 처장이 식사하고 있었는데 그녀의 말을 듣고 크게 놀랐다. 그는 연변자치주위 서기인 리양에게 이런 친구가 아예 없다는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였다. 하여 식사가 끝난 뒤 그는 김연을 미행하여 그녀의 승용차 번호를 몰래 기억해두었다.
이튿날 이 처장은 자신이 들은 상황을 리양에게 회보했다. 회보를 듣고난 리양은 이상하기도 하고 격분하기도 했다. 그는 즉각 비서에게 조속히 이 문제를 조사할것을 지시했다. 비서는 연길시공안국 치안대대를 찾아 조사했으며 치안대대는 얼마 안되여 차번호를 통해 그녀가 워낙 만기석방인원이고 아울러 전과가 많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2007년 3월 26일, 경찰들은 김연의 한 고급주택에서 그녀를 찾아냈고 그녀는 주위 서기에 관한 비방언론을 살포한데 대해 모두 승인했으며 경찰은 그녀에게 10일간의 행정구류처분과 벌금 500원을 안겼다.
김연이 구류된 뒤 세심한 사건담당 경찰은 여러가지 의문점들이 많다고 느꼈다. 만기석방 인원으로서 정당한 직업과 안정된 수입도 없이 어떻게 고급승용차를 몰고 또 이토록 고급스러운 주택에서 살수 있는지? 경찰들은 이와 같은 의문점들을 상급에 층층이 보고했다. 연길시공안국은 연구를 거쳐 그녀에 대해 계속 깊이 심사하기로 했다.
얼마 안되여 차량관리소와 부동산등록처에서 반영한 상황에 대해 경찰들은 놀라움을 금할수가 없었다. 그것은 김연이가 고급승용차 6대, 고급 주택 3개를 갖고있다는것이였다.
중대부패사건 관원들 800만원 사기당해
2007년 4월초, 김연은 마침내 경찰들에 자백했는데 그 결과는 사건을 처리하는 경찰, 심지어 공안국장들까지 크게 놀래웠다. 워낙 김연이가 생각밖에도 1년도 안되는 사이에 연변자치주정부 부비서장한테서 180만원을 사기했던것이였다.
2007년 4월 5일, 사기범죄혐의로 김연은 형사구류되였고 4월 28일 체포되였다. 이 사건은 연길시공안국 경제수사대대에 이송되였다. 경제수사대대는 신속히 전문사건수사팀을 내오고 이 사기사건에 대해 조사했다. 일층 조사한 끝에 김연이가 차종일을 제외하고 또 기타 정부관원들을 사기한 사실이 밝혀졌다.
김연은 도합 17건의 사기범행을 저지르고 차종일 등으로부터 도합 인민페 787.97여만원을 사기했으며 그 장전으로 연길시에 가옥 3개, 차고 2개, 승용차 6대를 샀으며 나머지 돈을 가옥장식, 개인의 지출에 사용했다. 사건이 발생한후 경찰은 장전과 장물 550여만원을 되찾았다.
일개 주정부 부비서장이 어떻게 180만원이나 되는 엄청난 돈을 움직일수 있겠는가? 이는 연변자치주규률검사위원회를 놀라게 했을뿐만 아니라 길림성규률검사위원회 지도자들의 놀래움도 자아냈다. 길림성규률검사위원회와 연변자치주규률검사위원회는 전문 사건수사팀을 내오고 차종일의 경제문제를 최종적으로 밝혀냄과 아울러 2007년 6월 1일에 그에 대해 수사를 진행했다.
2개월간의 수사를 거쳐 전문 수사팀은 차종일이 연변자치주국토자원국 국장, 연길시장, 연변자치주수리국 국장으로 지내던 기간의 탐오, 수뢰, 거액재산 출처 불명 등 중대한 위법문제를 밝혀냈다. 한편 차종일이 녀색에 빠져 부화타락한 사실과 여러차례 부동산개발상이 제공한 성회뢰(性贿赂)를 받은 사실도 밝혀냈다.
7월 30일, 연변자치주규률검사위원회는 그에게 당적, 공직 취소처분을 주고 그의 범죄혐의 문제를 사법기관에 넘겼다.
사법기관은 1년 남짓한 조사를 거쳐 2008년에 김연과 차종일을 각각 기소했다. 2008년 5월, 김연은 사기죄로 연변자치주중급인민법원으로부터 무기형을 선고받고 정치권리를 종신 박탈당했으며 개인의 전부 재산을 몰수당했다.
2009년 6월 24일, 연변자치주중급인민법원은 차종일의 탐오, 수뢰, 거액재산 출처 불명 사건에 대한 1심판결을 내렸다. 법원은 차종일이 1996년부터 2006년까지 직무의 편리를 리용하여 공금 330만여원을 탐오하고 타인의 회뢰 680만여원을 불법적으로 수수했으며 또 1000여만원의 거액재산에 관해 그 합법적 출처를 밝히지 못했다고 인정했다. 법원은 탐오, 수뢰, 거액재산 출처 불명 여러가지 범죄를 병과하여 차종일에게 종신징역형을 선고, 정치권리를 종신 박탈함과 아울러 개인의 전부 재산을 몰수했다.
/인민일보
(본 기사중 차종일과 김연을 제외하고 모두 가명을 사용했음)
전 최고인민법원 부원장에 종신형
최고인민법원의 부원장을 지낸 황송유(52세)가 19일 뢰물수수 혐의로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이번 판결로 황송유 전 부원장은 신중국 건국후 뢰물수수 혐의로 재판과 처벌을 받은 최고인민법원 최고위층 관리로 기록됐다.
하북성 랑방시중급인민법원은 이날 황송유 전 부원장의 뢰물수수죄에 대한 1심 재판에서 무기징역형을 선고하고 정치권리 박탈 및 개인재산 전부 몰수령을 내렸다.
황송유는 2005년부터 2008년까지 한 법률회사로부터 390만원의 뢰물을 받는 대가로 이 회사측에 유리한 판결을 내려준 혐의다.
그는 또 1997년 광동성 잠강시중급인민법원 원장으로 재직할 당시 정부기금 120만원을 횡령한 혐의도 받아왔다.
/문회보
흑룡강신문 2010-01-22 14:12:26